의창회편(醫窓滙編)
  • 정가
    30,000원
  • 출간
    2019년 8월 01일 출간
  • 출판
    장계출판사
  • 지은이
    권삼수 지음
  • ISBN
    919-11-968203-6-7 93510
  • 쪽수
    4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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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회편(醫窓滙編) 소개서
≪醫窓滙編≫은 전편에서는 모두에 ≪한국 15대의약서의 解題와 서문≫을 수재하고 이어서 말미에 漢土의 의약서이지만 東西古今에 추종을 불허하는 본초서인 ≪本草綱目≫에 당대의 명문장가 王世貞이 쓴 서문을 부기하고, ≪婦人大全良方≫, ≪世醫得效方≫, ≪醫學入門≫과 ≪萬病回春≫의 서문을 번역하여 원문과 함께 수재하였으며, 아울러 ≪景岳全書≫의 역대 저명 版本의 서문들을 첨재하였으니 好學精進하는 의가들의 참고에 일조가 되고자 하였다. 그리고 후편에서는 필자의 두찬 중에서 逸稿를 발췌하여 수재하였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언어문화 중국간체자 ≪胎敎新記≫의 번역문과 ≪산림환경과 건강≫ 등을 수재하고, 기타 의약에 관한 논술문 수편을 첨재하여 완성하였다. 그리고 新藥性歌는 方藥合編에 수재되어 있지 않으나 방서에서 이따금 소용되는 88개의 본초로서 필자가 본초 초학시에 우선 본초의 약성을 쉽게 익히고자 비록 藥性歌라고 이름은 지었으나 詩의 운률과 상관없이 본초의 성상과 효능에 우선하여 편집한 내용이다. 그런데 文辭가 산만하여 매우 거칠고 비루한 부분이 파다하다. 하지만 뜻있는 후학들이 疏誤한 부분을 바로잡고 미비한 부분을 보충하면서 韻을 아름답게 조절한다면 본초를 처음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도 되기를 바라면서 편술하였다.
杏林埜人 自傳

벼랑 밑 응달에도 때가 되면 봄은 반드시 찾아온다.

원래 출간되는 書冊의 권말에는 편집과 출판과정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록하는 것이 발문(跋文)의 관례이다. 그러나 이제 ≪醫窓滙編≫을 마지막으로 우고(愚瞽) 필생(畢生)의 저작(著作)들을 마감하면서 전 생애에서 등창한고(燈窓寒苦)와 발산섭천(跋山涉川)의 역정들을 약술하고자 한다.

우고(愚瞽)의 고향은 경북 포항시 죽장면 하옥리 배지미골이다. 여기는 첩첩산중으로 당시에는 버스를 타거나 구경이라도 하려면 하루 종일 30Km 가량 되는 먼 길을 힘들게 걸어야만 하는 오지 마을이었다. 이 배지미골에서 나서 유년시절을 앞뒤의 높은 산들만 바라보며 오십천 상류 청산녹수의 맑은 물을 마시며 성장해 왔다.

유년시절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건강악화로 인해 다니던 야간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군대를 다녀와서 26살에 겨우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으며, 36살에야 간신히 고졸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년이 넘은 43살에 다행히 한약업사에 합격하여 행림(杏林)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와 같이 중쇠(中衰)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겨우 의약제중(醫藥濟衆)의 보업(寶業)으로써 처자식을 건사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선천성 폐조직의 기형으로 인해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도록 통초(痛楚)받던 숙질(宿疾)을 11시간의 수술을 함으로써 목숨을 겨우 건질 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 생명의 여탈을 관장하는 천지신명(天地神明)께서 우고(愚瞽)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더 시킬 일이 남아 있어서 잠시 동안 더 살려준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진심갈력(盡心竭力)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精進)하게 되었다. 따라서 60세에 가까워서야 겨우 심도 깊은 한의학 서적들을 약간약간 섭렵(涉獵)할 수 있었다.

일찍이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경사이우(經師易遇)이나 인사난봉(人師難逢)이라 하였다. 즉 “글을 가르쳐주는 스승은 만나기 쉬우나 인생을 가르쳐주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우(不遇)했던 우고(愚瞽)에게는 남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학문을 가르쳐주는 스승조차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오로지 하늬바람 불어오는 도벽설산(韜碧雪山)을 혼자서 오르고 올라서 드디어 태산준령을 넘고 또 넘었다.

그렇지만 가난과 질병으로 인한 도빙섭수(蹈氷涉水)와 절체절명(切體絶命)의 열악한 환경에서 천자문 한 줄도 배우지 못한 행림야인(杏林埜人)이 20년간 세월을 절차탁마(切磋琢磨)로 노력한 결과에 의해 드디어 2,300쪽의 거질인 ≪校註景岳全書≫ 64권을 최종적으로 재행(梓行)할 수 있었다. 이는 실로 망구(望九)의  상유경박(桑楡景迫)에 과감하게 결정한 고주일척(孤注一擲)이었다. 즉 노름꾼이 남은 밑천을 마지막 한판에 다 걸고 단판에 승부를 걸듯이 ≪校註景岳全書≫를 출판한 것이다. 그리고 우고(愚瞽)가 직접 출판형태로 편집함은 물론, 장계출판사를 설립하여 과감하게 자가출판을 함으로써 ≪景岳全書≫ 진수(眞髓)의 광범위한 보급을 위한 파격적인 보급특가를 실현할 수 있었다.

이는 오로지 회남자(淮南子)의 가르침을 따라서 규보불휴(蹞步不休)면 파별천리(跛鼈千里)를 실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이요 마저성침(磨杵成鍼)이었다.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노력 없이는 이룰 수 없었으니 곧 수적천석(水滴穿石)이나 정위전해(精衛塡海)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바둑 기사가 바둑을 둘 때 죽을 각오로 둔다고 했다. 우고(愚瞽) 자신도 죽을 각오로 몸은 돌보지 않고, 잠시 동안의 틈나는 시간에도 안두(案頭)에 앉아 의적(醫籍)에 집중함으로써 방대한 ≪景岳全書≫를 완정(完訂)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산(海山) 조헌영(趙憲泳)은 35살(1934)에 ≪通俗漢醫學原論≫을 출판했는데, 우고(愚瞽)는 그 나이 때에 가난과 질병의 고난 속을 헤매면서 명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 시절이었다. 그리고 중경(重卿) 조정준(趙廷俊)은 “금년에 내나이 71살이니 곧 세상을 하직할 나이이라, 정력이 쇠잔하여 어떤 것을 들으면 듣는 대로 곧 잊어버리게 되어 책을 편집하게 되었다(年今望八桑楡景迫 精力衰耗 隨得隨失 遂輯取古方)”라고 하면서 ≪及幼方≫을 저술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지금에 생각하니 愚瞽 나이가 곧 81세(竟自望九)인데 ≪校註景岳全書≫ ≪東醫驗方續纂≫ ≪漢文漢字便覽≫ ≪景信醫方≫ ≪醫窓滙編≫ 등을 금년 한 해 동안에 모두 출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분수 넘게 연달아 출판을 거듭하는 것이 과연 이래도 괜찮을까? 자문해 본다. 혹여 士人들이 보기에 노욕이 지나쳐 망현기장(妄衒己長)한다고 조롱하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구나! 정녕코 모든 두찬(杜撰)들이 고설(瞽說)이 분분(紛紛)하지만 우로(愚魯)의 본뜻은 오직 눈감기 전에 평생 동안 쌓은 용쇄(庸瑣)한 치언(巵言)들을 후학들에게 전하고 떠나고자 하는 데 소망이 있을 뿐이니 오해하고 질책(叱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라서 이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서 절체절명(切體絶命)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항상 진심갈력(盡心竭力)으로 정진(精進)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만 우고(愚瞽)가 헛된 인생을 살지 않으려고 우고(愚瞽) 스스로를 준엄하게 다그치고 채찍질한 작은 흔적일 뿐이다. 이처럼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참괴하기 그지없지만 이것이 숨김없는 내 인생의 전부이다. 그러나 마음엔 항상 연비어약(鳶飛魚躍)하는 무하유향(無何有鄕)에서 조용하게 살고 싶은 것이 우고(愚瞽)의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데 장지망구(將至望九) 상유경박(桑楡景迫)에 조물주(造物主)의 소명(召命)을 받들어 소임을 다 했으니 이제는 구천(九泉)에 계시는 존사(尊師) 장경악(張景岳) 선생님께 문후(問候)올리고, 비천(卑賤)한 후배로서 좀 참월(僭越)하게 산정(刪定)했음을 정중히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해야지!

아~ 천부재(天覆地載)의 대덕(大德)으로 지금까지 삶을 누렸으니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처럼 오로지 대자연의 섭리 따라 물같이 바람같이 한세상 살았으니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리다.(聊乘化而歸盡)

2020 臘月 歲暮 杏林埜人 權三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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